(VTC News) - Ô Quan Chưởng은 오래된 탕롱 시대의 유일하게 남은 성문으로, 고대 수도의 중요한 역사적 흔적을 담고 있다.
하노이의 마지막으로 남은 성문인 Ô Quan Chưởng은 탕롱 성의 깊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. 수많은 역사적 변화와 기후 조건을 견뎌온 이 문은 여러 차례 복원을 거쳤다. 그 결과, 이 고대 성문의 이끼가 덮인 벽과 옛날의 매력은 다소 퇴색되었다.
역사 기록에 따르면, 탕롱은 원래 5개의 성문이 있었는데, Ô Cầu Giấy, Ô Chợ Dừa, Ô Cầu Dền, Ô Đống Mác, 그리고 Ô Quan Chưởng이었다. 각 성문은 낮에는 열리고 밤에는 닫히는 장벽으로 세워졌으며, 도둑을 방지하고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울타리와 순찰이 있었다.
Ô Quan Chưởng, 또는 Ô Đông Hà(동하구의 문)라고 불리는 이 문은 레 왕조 시절인 Cảnh Hưng 10년(1749년)에 건설되었다. Cảnh Hưng 46년(1785년)에 문은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고, Gia Long 3년(1804년)에 재건되어 현재의 크기로 확장되었다. Ô Quan Chưởng은 탕롱 성을 둘러싸고 있는 흙벽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.
Ô Quan Chưởng은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, 응우옌 왕조 특유의 건축 양식인 '보루' 형태로 지어졌다. 1층은 3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, 중앙 문은 높이와 폭이 약 3미터, 양쪽 문은 폭이 약 1.65미터, 높이는 약 2.5미터이다.
눈에 띄는 점은 세 개의 문 모두 아치형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이다. 2층은 중앙 문 위에 위치한 작은 4개의 지붕이 있는 보루로, 육각형, 사각형, 그리고 장미 무늬로 장식된 난간이 둘러싸고 있다.
중앙 문과 보루 사이에는 높이 약 1미터, 폭 약 3미터의 직사각형 틀이 있으며, 그 위에는 '동하문(東河門)'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.
중앙 문 왼쪽 벽에는 1881년 황지에우 총독이 세운 석비가 있는데, 그 내용은 이 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병사들이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다.
세월의 흔적과 이끼로 덮인 벽들은 Ô Quan Chưởng에게 고대의 매력을 더해주어 많은 국내외 방문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.
역사적 기록에 따르면, Đông Hà Môn은 프랑스군과 맞서 싸우다 하노이를 방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"Chưởng cơ"(베트남 봉건 시대의 군 지휘관)와 그의 100명의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Ô Quan Chưởng으로 이름이 바뀌었다. 하노이 출신이거나 Ô Quan Chưởng, Hàng Chiếu, Trần Nhật Duật 거리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들에게 Ô Quan Chưởng은 그들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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